2018/05/15 00:57

같은 사람한테 두 번 차이기 있음? 있음. 소개팅남 추억2. 너, 우리, 연애


나를 처음으로 찬 그 소개팅남을 9개월 뒤 주선자 결혼식장에서 다시 만났다.
그는 여전히 키가 작았고, 단정했으며, 소심했다.
그 날 밤 11시 55분에 카톡이 왔다.

남자: " 오랜만에 얼굴봐서 반가웠어. 더 예뻐지고 좋아보이더라."
여자: " 나도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어. 너도 좋아보이더라."
남자: " 그래,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어쩌고저쩌고. "
여자: " 그래 너도~"

어쩌고저쩌고는 기억이 안난다.
솔직히 카톡을 보고 사알짝 짜증이 났다. 이 딴 얘기를 왜 굳이 이 시간에 겨우 저 두 문장 얘기하려고 보낸건가?
직감적으로 다른 건 다 모르겠고, 아- 이 남자는 소심하다. 나랑 안맞는다. 라는 것이 팍 느껴졌다. 이 직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훗날 밝혀진다.

그리고는 그냥 또 7개월이 지나갔다.
주선자가 집들이 겸 밥이나 한 번 먹자고 연락이 왔다. 그 소개팅남도 같이 먹어도 되겠냐고, 불편하냐고 물어왔다. 우리는 셋 다 동갑이었다. 그래서 난 상관없다고 했다. 어차피 감정도 없고 얼굴 봐도 길거리의 돌멩이 같은 사람이니까 정말 상관없었다.

저녁을 먹고 볼링을 치고 신혼집에서 다시 음주가무를 즐겼다.
그 시간 내내 나는 그 소개팅남을 나의 여자친구들처럼 대했다. 그냥 완전 편하게. 눈치 볼 필요없으니까.
그리고 난 대리를 불러서 집에 왔다.
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.
직감적으로 이 새벽에 전화를 하는 사람은 그 소개팅남이겠군.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.
받았다. 역시나 그였다. 잘 들어가고 있냐며 자긴 집에 들어왔다고. 어쩌고저쩌고.
그 뒤는 생각이 안난다. 난 니 번호가 없다. 너는 내 번호 왜 아직 안지웠냐 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그한테 했던 것 같다.  

그리고는 그 다음날부터 소개팅남에게 계속 연락이 왔다.
카톡, 전화 다양하게-
그 전에 한 달 만나는 동안에는 연락도 잘 안하고 그게 최선이라는 시덥지도 않은 소릴하더니-
사람이 변했나 싶을정도로 열심히 연락이 왔다.
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.
영화보자고 하길래 봤다. 밥 먹자고 하길래 밥 먹었고. 만나자고 해서 만났는데, 내일 또 만나도 되냐고 계속 물어왔다. 그래서 시간되면 보고 안되면 되는 날 보고 그렇게 한 달을 만났다. 나는 얘가 굉장히 나를 만나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.
그 소개팅남은 집들이에서 날 보고 다시 잘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. 그 전에는 본인의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있었고, 상황도 좋지 않았었다는 고백 비스무리한 얘길 했다. 그리고 나에게 짜증날 수도 있을 것 같다며, 본인이 나에게 이렇게 다시 연락하고 만나자고 하는게 미안한 눈치였다.

나는 생각했다. 지금 만나는 사람도 없다. 얘는 멀쩡한 애다. 그 때는 나도 나답지못했다. 지금은 새로운 연애를 해도 될 것 같다.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지속된다면 만나볼만하다.
라는 결론을 내리고 우린 다시 사귀기로 했다.

젠장.
만나지 말았어야 했다.
그 소개팅남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.
한 달 만나보고 어떻게 아냐고 욕했던 나를 반성했다.
우린 다시 만났지만, 그 전에 한 달 만났을 때보다 더더더더더 힘들었다.

다시 사귀기 전 딱 한 달만 좋았던거였다. 나를 다시 만나려고 노력했던 그 때 그 한 달만.

이 소개팅남은 나를 처음 찼을 때 만났던 그 한 달 동안의 내 모습, "아, 얘는 이런 애구나." 라는 선입견을 지멋대로 갖고 나를 바라보고 너는 이런 애잖아. 시전을 해댔다.

사람이 살면서 보통 남들에게 주로 많이 듣는 얘기가 있지않는가. 그게 그 사람 이미지인거고.
나는 살면서 이 소개팅남에게 태어나서 다 처음 듣는 말만 들었다. 얘는 날 어떻게 보고 있는거지?
그리고 내가 자주 듣는 말들의 내 모습들 - 밝다. 긍정적이다. 사랑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난다. 예의가 바르다. 등등.
근데 얘는 나보고 - 감정기복이 심하다. 그런 게 피곤하다. 다혈질이다. 배려가 없다. 등등.

혼란스러웠다.

그리고 그렇게 지적해대는 그 소개팅남이 미워지기 시작했다. 지지않겠다는 적대적인 마음이 생겼다. 내가 말을 안하고 있으니까 그렇지 너는 염세적이고, 비관적이고, 사랑 표현할 줄도 모르고, 소심하고, 말로만 배려한다 하고 결국엔 다 말하고 네 멋대로다.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, 한 마디도 못했다. 이게 내 한이다.

각설하고, 만나는 내내 우린 서로 배려한답시고, 서로 답답하게 만들었고, 성향은 더욱 안맞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,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.

나도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벼르고 있다가 지적을 한 두개 해댔다. 마지막 지적을 끝으로 우린 헤어졌다.

이렇게 간단히 헤어졌다.
라고 끝낼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있다.
정말 이건 내 인생의 굴욕 베스트 원이라고 할 수 있다.
지난 번 인생에서 처음으로 차였다. 라는 것을 겪을 때 그것이 내 인생의 굴욕 베스트 원이라고 생각했지만, 아니었다.
같은 사람과 다시 만나고 또 다시 헤어졌을 때 마지막 순간은 내가 겪은 굴욕 중에서 그야말로 진짜 베스트다. 이건 친구들도 소리를 지르며, 인정했다.

내가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은 건, 이게 다 그 소개팅남에게 말 한 마디 못하고, 타이밍 싸움에서 진 채로 또 다시 같은 사람에게 인생 두 번째 차임을 당했기 때문이다.

같은 사람에게 두 번 차이기 있음?

사실 굴욕은 차인 게 문제가 아니다.
말하기도 창피한. 네 글자. 이건 다음 에피소드에서 계속-

오락실, 우산, 뽁뽁이, 미술관, shit이네, 권리호의, 장난, 아-생일선물, 테니스,책,화장실 등등
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.
내가 널 얼마나 배려하고, 맞춰주고, 잘해줬는데-

하고싶은 말 다 하면서 살아야한다.
특히 남녀관계.
나처럼 이렇게 속으로 끙끙 앓다가, 말 한마디 못하고 차임 당하면, 이렇게 블로그 글이 길어지는거다.

이번 에피소드에서 이 소개팅남을 끝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, 나의 오산이었군.
소개팅남 에피소드는 다음번에 무조건 끝장을 내는걸로-


덧글

  • 와오.ㅋㅋㅋ 2018/05/15 10:03 # 삭제 답글

    재밌어요!!!!!!기대합니다.ㅋㅋㅋ
  • memoriz 2018/05/15 23:33 #

  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. ㅋㅋ 다음 글도 기대에 부응해야할텐데...
  • 2018/05/15 18:28 # 답글 비공개

    비공개 덧글입니다.
  • 2018/05/15 23:38 # 비공개

    비공개 답글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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