2018/05/16 03:20

"자기생각" 을 보내고 난 차였다. 인생굴욕. 소개팅남 추억3. 완결. 너, 우리, 연애


나를 찬 그 소개팅남을 1년 4개월 뒤에 재회하여 4개월을 만나고 헤어졌다.
사실 연인관계를 4개월이 아니라 한 달도 버틸 수 없는 지경이었는데, 재회하기 전의 기간 동안 나의 연애사업이 너무 회의감이 들어서 그냥 버티고 버텼다.

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어려웠다. 소개팅남들은 나를 좋다고 하는데, 나는 도저히 좋아지지가 않았다. 손 잡는 스킨쉽이 하기 싫어서 다 한 달 정도 만나다가 "남자로 안보인다. 미안하다." 를 돌려 말하고 그만두었다. 지금까지도 그 남성분들에게 미안하다.

그래서 다시 만난 이 재회남과 나 또한 잘해보고 싶었다. 짧은 썸, 연애를 탈피하고 싶었다.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니깐.

그 소개팅남과 헤어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에피소드 중 몇 개.
#오락실
오락실에 가면 누구나 승부욕이 발동하고, 엔돌핀, 아드레날린 막 이런 호르몬 분비되고 그러는 거 아님? 재밌게 다트 던지고 에어하키 게임하고 나왔는데, 자꾸만 내 말을 따라한다. "왜 그래?" "왜 그래?" "왜 내 말 따라해?" "왜 내 말 따라해?" 이딴식으로. 자기 나름대로 나에게 눈치를 준거란다. 이 남자는 내가 오락실에서 나와서 기분좋아서 하이톤 된 목소리가 싫었다는 게 결론이다. 차분하길 원했다는거다. 나는 이 얘길 듣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. 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싫고, 차분하기만 한 여성을 원하면 나를 왜 만나지. 근데 이 남자는 고민하는 내 모습이 어이없다고 했다. 상대방이 원하는 걸 그냥 "그래, 알았어, 노력해볼게" 하고 넘기면 되는데 '나는 잘못이 없는데 뭐가 문제지' 라고 생각하는 듯한 내 모습이 실망스럽다고 했다. 세상에나. 실망이라는 단어를 이런 때 쓰는건가? 그래서 나는 우선은 알았다고 했다. 그래도 한마디는 해야겠어서 "그래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주면 좋겠다는 게 솔직한 내 마음이야~" 라고 웃으며 말했다. 그랬더니 나보고 철이 없다고 했다.
이 날 헤어졌어야 했다.
 
#장난
아무리 남고, 공대를 나왔어도 기분좋은 장난을 쳐야지, 내가 도저히 받아줄 수 없는 장난들의 연속이었다.
나는 화가 안났는데 "화났어? 화났네~!, 짜증났어? 짜증났지? " 를 사귀는 내내 무한반복.
책을 읽는다 하거나, 테니스 치러간다고 하면 "어쩐일로? 웬일로?" 로 받아침. 나한테 관심이 없는건지, 아님 이걸 장난이라고 치는건지.. 이렇든 저렇든 기분 좋은 물음은 아니었다. 뉘앙스도. 생각이 안나서 그렇지 자기딴에는 장난이라고 하는 말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.

#뽁뽁이
원목주차판을 그에게 선물해줬다. 뽁뽁이가 당연히 들어있었다. 누구나 눌러보고싶지 않는가. 늦은 밤 매우 시끄러운 치킨집으로 가서 야식을 먹는 자리였다. 나는 뽁뽁 눌렀다. 그가 나에게서 한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휙 뺐더니 자기가 몇 번 뽁뽁 누르고 휴지통에 넣었다. 물론 공공장소이니, 삼가라는 의미면 백번 천번 이해한다. 근데, 그러는 너는 왜 누르고 나만 무지하고 잘못된 인간을 만드는 말들을 무지막지하게 쏟아냈어야 했니? 안그래도 지적해대서 적대적인 마음인데, 모순된 말과 행동이 난 이해가 안갔다.

#권리호의
내 휴대폰 필름 가장자리가 벗겨지려고 해서, 초반에 사귈 때 본인이 해주겠다며 나는 아무말 안했는데 굳이 인터넷으로 주문해서 갈아주겠다 했다. 실험삼아 본인 휴대폰을 먼저 하는데 실패, 그래서 나머지 한 장으로 다시 자기 폰에 해서 성공. 그럼 내 폰은? 다음에 다시 주문해서 해주겠다고 했다. 시간이 많이 흘렀다. 4개월 뒤 나는 당연히 애교있게 휴대폰을 가르키며 "으음~ 이건 언제 해줄거야? ^^" 그랬더니 "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" 며 니가 할 수 있으면 니가 하면 되는거라며.. 뭐?????? 그 말이 왜 여기서 나와?

#우산
오랜만에 둘 다 차를 두고 지하철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. 나는 집에서 나올 때 비가 와서 우산을 챙겼다. 그는 비가 안왔어서 안챙겼다고 했다. 만났다. 그가 내 우산을 들어줬다. 고마웠다. 그래서 데이트 중간에 내가 들겠다고 우산을 달라고 했다. 고맙고 미안하니까. 근데 그 때 하는 말이 "이제서야?" "그러게 우산을 왜 가져왔어" 난 속으로 부글부글 끓지만 "아직 집에 가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이제는 내가 들게" 라고 또 웃으며 말했다. 말을 예쁘게 할 줄 모르는건가? 저걸 장난이라고 친건가? 미스테리다.

#shit이네
대망의 헤어진 결정적인 계기의 그 날이다.
우린 이미 마음이 많이 상해있는 상태에서 카페로 들어갔다. 각자 마실 음료를 시켰는데, 내 음료를 맛보더니 자기 음료를 먹다 먹으니까 내 음료 맛이 "shit"이네 라고 말했다. 그래서 내가 좋게 그거 욕이니까 하지말라고 얘기했다. (나의 마지막 지적-나도 안 할 수 있었지만 기회를 포착해서 지고싶지 않았다) 그랬더니 그게 무슨 욕이야 라고 해서 그건 욕이 맞다고 했다. 아니다 맞다를 계속하다가 결국엔 나도 참을 수 없어서 사전을 검색해서 보여줬고, 이게 그렇게까지 할 일이냐며 나를 매도하길래, 다시 솔직하게 얘기했다.
"아무렴 그래도 내가 마시고 있는 음료인데, 그렇게 내 앞에서 음료수 맛이 shit이네, 그러면 내 기분이 좋겠느냐" 고 했다.
그랬더니 그는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 안하고 이제와서 말을 바꾸냐고 받아쳤다. 
그냥 말았다. 그리고 우린 저녁도 안먹고 각자 집으로 갔다.

난 사실 위에 에피소드들보다 생각이 안나는 더 많은 일들과 대화를 통해 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 했었다. 내가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만나야 할 이유가 있나.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. 그러나 100일을 못넘기고 헤어지는 게 싫었다. 나와의 약속 같은- 일종의 나만의 마지노선을 정했던거다- 내 자신에게 그래도 참아보자 도를 닦는 기분으로 참고 또 참았다.

shit이네 그 날 이후 2주 동안 안만나고 전화도 안하고 카톡으로 서로의 생사만 확인했다. 나는 이제는 당연히 헤어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언제 얘기해야하나, 얘는 그래도 나를 만날 생각이 있는건가.. 눈치보며 나는 너와 헤어지고 싶다 뉘앙스를 카톡으로 풍겨댔다. 근데 이 남자는 아직도 자기는 밥 먹었냐며, 계속 말끝마다 자기자기라고 얘기하는거다. 뭐지. 얘도 힘들텐데 노력하는건가? 한 열흘을 무미건조하게 너와 헤어지고 싶어!!!!!! 의 뉘앙스를 풍기다가,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만나서 얘기해보고 나도 만나기 전엔 노력을 해야한다고 하여 한 3일 노력했다-

드디어 굴욕의 그 날.....
난 얘도 나랑 비슷한 마음일거란 생각을 하긴 했다. 근데도 혹시 몰라서, 계속 눈치보고 있었다. 솔직히 친구들이 옆에서 안부추겼으면 진작에 헤어졌을텐데, 이 남자도 알면서 노력하는걸거라고 나도 살갑게 해야한다고...그래서....그래서....ㅠㅠ 

남자: "나는 친구랑 밥먹으러 어디 왔어."
여자: "응 맛있게 먹어~ 근데 이게 끝이야? ^^"
남자: "그럼 뭐?"
여자: "나는 안궁금해?"
남자: "뭐하는데?"
여자: "자기생각"

으악!!!!!!!!!!!!!!!!!!!!!!!!!!!! 저 지하 땅 속 깊이 숨고싶다.
솔직히 난 네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, 오그라들어도 갈데까지 가보자 라는 마음으로...
(이 카톡을 보내면서도 실시간으로 친구한테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게 맞는거냐. 진짜 싫다. 너무 헤어지고싶다. 를 보내고 있었다)
난 내일모레 만나서 얘기하기로 했으니까~~~~ 그래서, 그래서 그런거였는데!!

그 날 우린 "자기생각"을 끝으로 헤어졌다.
 
근데 끝도 비매너.

미안해. 먼저 카톡 띡 하나 오길래,

전화를 3번 정도 걸었는데 처음엔 바로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음성언니가 나오게 전화를 넘기더니 나머지 2번 역시 안받았다.
또 잠수. 특기가 잠수이신 줄은 이 날 확실하게 확인.
그래서 카톡을 보냈다.
이래저래 해서 이렇다. 잘 지내라. 
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. 사실 그한테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, 얼굴보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, 어차피 헤어지는 거 말해서 뭐하나 싶어 참고 그냥 잘 지내라고 하고 끝냈는데.

이건 아닌 것 같다.

싸우기도 해야하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게 좋은 것 같다.

이 남자를 만나면서 인생에서 별의별 경험을 다 해봤다. 안들어도 될 말들을 너무 많이 들은 것 같다.
 
그치만 나는 이 남자에 대한 후회는 없다. 만나면서 최선을 다해서 잘해줬다. 10번을 만나면 8번은 그가 사는 동네로 내가 갔고, 만나는 동안 외국을 2번 나갔기 때문에 선물도 종류별로 사다주고, 평소에도 필요한 거, 좋아하는 거 기억해서 다 사다주고, 나도 돈벌고 너도 돈 버니까 비슷하게 내야한다고 생각했다. 특히 비싼 밥 먹을 때는 거의 내가 냈다. 나도 모르게 그한테 부담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냥 막 먼저 계산했다.

나를 두 번이나 먼저 차버린 이 남자는 꼭 무미건조하고 애교없고 염세적이고 비관적이며 늘 차분함을 유지하는 여자를 만나길 바란다.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 너와 안맞았었던 것 같다.
(이런 걸 뒤끝이라고 하죠)


아, 사실 오늘 기분이 매우 좋은 날이었다-
개인적으로 행복한 날이기도 했고-
그래서 이 소개팅남 얘기를 하고싶지 않았는데, 빨리 털어버리고 기분 좋은 것을 만끽하려고 썼다.
이제는 돌멩이 같은 소개팅남 얘기는 그만해야지-
글이 너무 길었다-


덧글

  • 붕숭아 2018/05/16 05:23 # 답글

    재밌게 읽고있어용!!! 기분좋은 일이 뭔지 궁금합니당ㅎㅎㅎ
    어서 이런 돌땡이는 털어버리시고 기분좋은일을 써주세요!!!
  • memoriz 2018/05/17 00:29 #

    네~~^^ 감사해요!! 돌땡이는 저 멀리멀리 ㅎㅎ 저에게도 얼른 봄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!
  • blue snow 2018/05/16 11:42 # 답글

    세상에...저런 사람이랑 어떻게 4개월을 만나셨나요..ㅜㅜ십분 같이 있기도 싫을 것 같은데...이제부턴 아니면 그냥 단번에 쳐내고 괜찮은 사람 만나시길!!
  • memoriz 2018/05/17 00:31 #

    그러게요!! 이제부터 정말 아니다 싶으면 단번에 쳐내려고요~~!! ㅜㅜ 아- 위로가 되었어요! 감사해요! ^^
  • 메르세드 2018/05/17 02:40 # 답글

    와 정말... 저런 사람을 4개월 참고 만나주신거는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섭리에 따라 뭔가 액막이를 한거 아닐까요;;; 힘드셨던 만큼 더 좋은 인연이 있을거예요! 이제 돌땡이는 멀리 기억도 안나는 구석에 던져버리고 나중에 술안주 없을때나 씹어주세요!
  • memoriz 2018/05/17 11:50 #

    그런거겠죠~~? 액막이!! 앞으로 아주 엄청난 행복이 오려나봐요 ^^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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